피칭: 36시간 전 통보, 카메라 꺼진 심사위원들 (7부작 중 3부)
7부작 시리즈의 3부입니다. 2부에서 서류상 절차를 정리했다면, 이번 편은 당락을 가르는 단계인 피칭이 실제로 어떤 모습인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부분을 알려 주는 자료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6개월의 공짜 연습
신청하기 전, 저는 6개월 정도 서울 곳곳에서 피칭을 하고 다녔습니다. 서울시가 여는 창업 경진대회가 수시로 있고, 창업 지원 건물과 프로그램을 갖춘 대학도 많습니다. 재학생이 아니어도 지원할 수 있습니다. 신청하고, 발표하고, 떨어지고, 배우고, 다음 대회에 또 나가면 됩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이 반복이 최고의 준비였습니다. 실전 피칭이 왔을 때 발표 자료는 이미 있었고, 숫자는 입에 붙어 있었고, "왜 한국인가"에 대한 답은 반사적으로 나왔습니다.
36시간 전 통보
서류 심사를 통과하자 면접 안내가 왔습니다. 약 36시간 뒤, 그쪽에서 정한 시간에 줌으로 발표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일정 조율 같은 것은 없습니다.
발표 자료가 준비되어 있다면 36시간은 충분합니다. 초대받고 나서 만들 생각이었다면 큰일 나는 겁니다. 신청 전에 모든 준비를 끝내 두세요.
카메라 꺼진 열다섯 명
형식은 발표 15분, 질의응답 1015분입니다. 제 발표에는 1015명 정도가 들어와 있었는데 거의 전원이 카메라를 꺼 두고 있었습니다. 질문을 진행하는 한 분만 화면에 보였습니다.
솔직히 힘들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발표를 검은 사각형들을 향해 하는 겁니다. 끄덕임도, 표정도, 아무 반응도 없습니다. 듣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분위기를 읽으려는 본능은 발동하는데, 읽을 분위기 자체가 없습니다.
숨은 함정도 있습니다. 보통은 청중에 맞춰 발표를 조정하지만, 여기서는 청중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습니다. 맞출 수 없으니 맞추려 하지 마세요. 사업 자체에 대한 가장 강한 논리를 만들어 정면으로 전달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받은 질문들
질의응답은 제가 나가 본 어떤 경진대회보다 날카로웠습니다.
- 왜 한국인가? 이 사업이 왜 한국에 있어야 하고, 왜 당신이 직접 한국에 있어야 하는가?
- 타깃 고객은 정확히 누구인가?
- TAM, SAM, SOM은 얼마이고, 그 숫자는 어디서 나왔는가?
- 데이터는 제대로 수집된 것인가?
마지막 질문이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시장 규모 슬라이드를 그대로 믿어 주지 않습니다. 산출 방식을 파고듭니다. 숫자가 대충 만든 것이라면 질문 두 개면 들통납니다.
첫 피칭을 마치고 저는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했습니다. 며칠 뒤 탈락 메일이 왔습니다. 그 메일에 적힌 네 가지 사유, 그리고 그 사유가 역설적으로 알려 준 심사위원회의 진짜 기준은 4부에서 다룹니다. 이 시리즈에서 가장 유용한 글일 겁니다.
요즘 제가 발표하고 다니는 것은 이 비자를 받기 위해 만든 플랫폼, 돈코드(DontCode)입니다. 다른 글은 블로그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 시리즈는 법률 자문이 아닌 개인 경험담입니다. 제도와 요건은 계속 바뀌니 신청 전에 공식 정보를 꼭 확인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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